※ 미약하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읽기 전에 주의 바랍니다.
APOCALYPSIS NOCTIS
파이널 판타지 15(이하 FF15)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플레이했고, 또 생각들을 정리했다. 내가 전투, 이야기, 캐릭터 등 많은 것들에 대해 말을 꺼내도 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플레이를 했을 때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너무나 부족한 이야기, 따로 노는 게임 내용과 세계 분위기, 밸런스 비중이 고르지 못한 캐릭터들, 답답한 전투 AI, 넓기만 넓고 할 건 단순한 오픈 필드. 이것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다른 의견이자 틀리지 않은 지적이다. 나 역시 그렇게 부족하게 마무리 지어진 부분을 체험했고 이에 공감한다.
본편 내용에의 몰입과 긴장감 조성에 필요했던 중요한 사건은 별도 영상 매체로 분리되었으며, 오락 안에서는 '선택', '계시', '운명' 등 불확실한 표현들을 이용해서 그저 오락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닥치고 이거나 해'라는 식의 불친절함이 넘쳐난다. 오락 안에서 언급되는 고유 명사들, 사건들, 자세한 주변 이야기들을 오락 본편이 말해주지 않는다.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고, 심지어 존재할지 조차 알 수 없다. 개발팀은 이러한 부분들의 보완을 약속했지만, 오락을 하는 이들은 지금 당장 오락을 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이 오락을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은, 현대에서는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FF15는 '호불호'와 소위 말하는 '망작'의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다. 이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도 다양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무엇보다 FF 팬덤은 기존 시리즈까지 있었던 '이게 FF냐'의 차원의 논쟁이 아니라, FF15는 '망작'이라는 의견에 맞서야 했다. 그 싸움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어떻게든 반푼이 미완성 망작 FF15의 낙인을 찍고 싶은 이들과 충분한 잠재력을 가졌지만 여러 사정으로 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작품 FF15라고 받아들이려는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 속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베르서스 13(이하 FFVS13)이 존재한다.
"노무라 테츠야가 기획했던, 그리고 그가 지휘 및 개발을 담당하던 FFVS13은 이렇지 않았다, 그는 FFVS13의 첫 트레일러와 인터뷰 등지에서 보여줬던 흥미로운 설정들과 정보들은 FFVS13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FF15로 개명되면서 노무라가 만들었던 FFVS13의 캐릭터 설정과 시나리오를 결국 타바타 하지메가 망쳐버렸다, FFVS13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 FFVS13이라면 우리가 FF15 이전에 기대했던 '제대로 된 왕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FF15를 지우고 FFVS13을 다시 만들어라."
10년의 기다림, FFVS13의 시절부터 FF15를 기다려왔다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쉽게 듣고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FF15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해야할 말이 있다. 설령 FF를 좋아해왔던, 지금도 좋아하는 이들에게 어떤 소리를 듣더라도 당당하게 말해야만 한다.
FFVS13, 그런 건 없다, 고.
VERSUS FANTASY
나는 FF15를 바르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FFVS13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 FF15는 FFVS13을 계승한 물건이다. 캐릭터, 설정, 세계 등 많은 것들이 FFVS13의 트레일러에서 볼 수 있었던 것들이다. 시프트 무브, 팬텀 소드 등의 기믹 또한 FFVS13의 그것이다. 그래서 FFVS13의 트레일러 때부터 이를 쫓아온 사람이라면 FF15 개명의 순간을, 그리고 개명 이후로 나오는 트레일러들을 보면서 FFVS13의 그것들을 겹쳐 보았을 것이다. 10년의 기다림이라는 표현 속에 FF15는 존재하지 않는다. 10년 간 기다린 사람은 2006년의 그 어느 때 트레일러로 선보였던 FFVS13을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FF15가 존재하지 않는 환상(FANTASY)과 싸우게끔 만들며, 사람들로 하여금 FF15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게임, 영화, 만화 등의 작품에서 감독의 역할은 중요하다. 감독은 작품의 기획 방향을, 세계의 설정을, 이야기의 가감을, 캐릭터의 비중을 결정하고 지시한다. 즉, 작품은 감독의 머릿속 구상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카구치 히로노부의, 키타세 요시노리의 , 노무라 테츠야의, 마츠노 야스미의, 토리야마 모토무의, 타바타 하지메의 머릿속 구상을 구현한 것이 각각의 작품들이다. 이러한 전제를 볼 때 작품의 감독이 바뀐다는 것은 기획 방향, 세계 설정, 이야기 구성, 캐릭터의 비중 또한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작품과 세계의 해석이 완전히 동일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FFVS13은 FF15가 되면서, 감독이 바뀌었다.
그렇다. FFVS13이 FF15가 되면서, 감독이 노무라 테츠야에서 타바타 하지메로 바뀌면서 FFVS13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 되어버렸다. 제 아무리 노무라 테츠야가 FFVS13 시절에 남겨둔 설정을 토대로 둔다 한들, 노무라 테츠야와 타바타 하지메는 다른 사람이고 설정의 이해와 해석 또한 다를 것이다. 이는 노무라 테츠야가 FFVS13 시절에 강조하던 요소와 타바타 하지메가 FF15로 강조하던 요소가 다른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노무라 테츠야의 FFVS13 시절에는 캐릭터, 스토리, 세계관 등을 조금씩 비추면서 기대감을 유지하려 했던 반면, 타바타의 FF15는 넓은 세계와 그 속의 여행을 끊임 없이 강조해오며 이를 제대로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처럼 두 사람은 게임을 통해서 제공하려는 것도 달랐다. 노무라 테츠야가 손을 뗀 시점에서 이미 이 오락은 FFVS13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FFVS13이 남겨둔 흔적들을 FF15에서 찾으며 FF15 속에서 FFVS13을 찾으려 했다.
이것이 FF15를 바르게 보지 못한, 10년의 기다림이 오히려 10년의 저주가 되어버린 이 상황을 만들어버린 가장 큰 요소이다. 이 오락은 10년의 기다림의 선물이 아니다. 스퀘어 에닉스(이하 SQEX)의 파이널 판타지(이하 FF) 시리즈의 넘버링 최신작 FF15이며, 이는 2013년에 개발을 발표한 물건이다. 즉, FF15의 물 밑 개발 기간이 얼마나 되었다 한들, 실제 사람들 눈 앞에 드러난 것은 3년 정도일 뿐이다. FFVS13의 환상을 좇는 이들이 하는, "FFVS13은 FF15와 다른 오락이다"라는 말은 어떤 맥락으로는 스스로가 현실을 인지하고 있음을 말한다. 맞다, 둘은 다른 오락이다. 2013년을 전후로 타바타 하지메가 지휘하는 FF15 개발팀은 FFVS13의 설정을 자기 책임 하에 자신들의 이해와 해석에 맞추어서 작품을 만들었고, 그것이 2016년 11월 29일에 발매된 FF15이다. FFVS13이 아니다. FFVS13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이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FF15를 조금 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중요한 선행 단계이다.
NOX AETERNA
FFVS13의 그림자를 벗겨내는 과정을 거쳐서 나온 FF15는 그럼 어떨까.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FF15는 미숙하다. 시도와 실험이 보이고, 성공과 실패가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한 덩어리로 묶는 것에 실패했다. 호평할 점들과 지적 받을 점들, 그런 것들을 FF15라는 작품 안에서 하나로 녹여내었어야 했다. 이 부분에 FFVS13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할 여지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FF15의 개발 과정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부분은 '오락을 하는 나'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오락을 하는 나'는 오락이 얼마나 할 만한지, 재미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할 뿐이며 오락 개발 과정의 우여곡절이나 에피소드들이 그 오락 그 자체에 대한 나의 이야기에 영향을 줄 필요는 없다.
서두에서 먼저 언급했듯이 가장 많이 지적 받는 것은 이야기이다. FF15 스토리의 문제는 미싱 링크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 그리고 게임과 '분위기'가 따로 논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FF15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소개되었던 킹스글레이브(King's Glaive)를 보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에, 본편 챕터 1과 챕터 2 사이에서 소개되는 왕도 침공의 충격은 얼마나 크게 다가왔었는가? 그리고 그 이후 바뀌는 무언가를 느꼈는가? 아마도 아무 것도 바뀌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루시스 왕국의 수도 인섬니아가 적대 제국 니플하임에 의해 함락당했다는 소식이 동네방네 전해지고, 왕과 왕자, 왕자의 예비 신부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라디오를 통해서 나오는 '무거운 분위기'를 얼마나 느낄 수 있었는가. 중반에 녹티스가 여섯 신의 힘을 얻어야만 하는 이유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가. 녹티스는 언제, 대체 무슨 '선택'을 받았는지 이 글을 읽는 '플레이어'는 알고 있는가.
FF15의 이야기의 문제는 설명의 부족, 그리고 상호작용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이전의 FF 시리즈들에서 NPC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퀘스트가 발생하거나 중요한 문제가 있을 경우, 주인공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그로 인해서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그 문제에 대한 불만을 주인공들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는 문제 해결 이후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또 다른 걱정들을 주인공들이 들을 수가 있었다. 왜냐면 이전까지 NPC는 내가 말을 걸면 답을 해주는 존재였고, 그들은 그 세계에서 사는 존재임을 분명히 그 대화 속에서 드러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FF15에서는 NPC의 수는 극도로 줄어들었다. 레스토랑과 식당에서 얻는 정보는 주변의 지리 정보일 뿐이고, 퀘스트에는 그 해당 지역의 고민거리나 상황을 알 수 있는 서술이 없고 오직 마물이니 퇴치해달라는 텍스트만 존재한다. 서브 퀘스트를 주는 NPC가 존재하지만, 서브 퀘스트가 그 세계에 끼치는 영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그 어떤 퀘스트를 해도 세계와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에오스는 후반부의 특정 순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으며, 사람들 역시 변하지 않는다. 멈춰버린 세계에서 오직 주인공들의 시간만이, 그것도 메인 퀘스트를 진행할 때만 시간이 움직인다. 제국군의 기지를 파괴함에 따라 바뀌는 분위기, 사람들의 이야기,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녹티스 일행(나)이 세상을 바꾸고 있구나, 라는 걸 알 수 있게 해줬을 텍스트 한 두 줄. 그 텍스트 한 두 줄이 없어서 플레이어는 녹티스 일행만을 보게 된다.
이는 일반 시민 NPC가 아닌 이름이 있는 게스트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투에 참여한다거나 이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비추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 하지만 그것이 녹티스 일행의 정서에, 혹은 이야기 진행에 일절 영향을 주지 않는다. 초반에 등장하는 코르 장군은 녹티스 일행에게 모험의 당위성(목적)을 제시하지만, 이후에 등장하는 그 어떤 캐릭터도 플레이어의 선택에 간섭하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플레이어는 15장에 달하는 여정을 단지 메인 퀘스트라는 이유로 진행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메인 퀘스트가 심도 깊고 세밀하게 녹티스가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했느냐면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녹티스가 왕이 되어 별을 구한다, 라는 구심점을 우직하게 이끌어나가고, 만족스러운 결말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같이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묘사들이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 아버지인 레기스 왕, 약혼자인 루나프레나, 동료들, 그리고 게스트 캐릭터들. 앞서 언급했던 설명의 부족이 녹티스 왕의 이야기를 빈곤하게 만들어버린다. 좀 더 풍성해질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자꾸 아쉽다. 보이지 않던 연결 관계, 더 보고 싶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 이것이 FF15의 가장 큰 패착이다.
FIGHT FANTASTICA
나는 비디오 게임에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두 가지를 드는데, 하나는 이야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게임 플레이다. 이야기는 플레이어가 오락을 지속해서 플레이하게끔 동기와 목적을 제공해주고, 게임 플레이는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진행하게끔, 혹은 그 세계 안에서 놀 수 있게끔 플레이어의 활동 영역을 제공한다. FF15의 스토리는 분명 부실하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오락 그 자체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 특히 전투는 FF13VS 트레일러에서부터 선보였던 순간이동, 즉 시프트 어택은 FF15에서 새롭게 도입된 실시간 전투 체계와 함께 기존의 FF 시리즈 전투와는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FF시리즈는 FF4부터 액티브 타임 배틀(ATB) 시스템을 통해서 어떻게든 턴제 전투와 실시간 조작감을 같이 잡아보려 했었다. 그렇지만 그 정점에 섰다고 평가하는 라이트닝 리턴즈: 파이널 판타지 13조차도 실시간의 그 느낌을 완전하게 구현해낼 순 없었다. 그러나 FF15는 드디어 기존의 FF와 다른 시도, 그리고 자신들 시리즈의 기본 골조였던 턴제를 떠나서 실시간 전투 체계를 도입했고 나는 이 시도와 성과에 매우 만족한다. 자유롭게 방향을 틀어가며, 혹은 과거에는 용기사나 궁수, 마법사로만 공격이 가능할 것 같은 위치에 있는 적을 시프트를 통해 순식간에 근처로 이동해 공격할 수 있다. 마법은 강력한 공격 수단이며 주변의 지형 기후마저 일시적으로 변화시키고, 때로는 같이 싸우는 동료들마저 휘말리게 한다. 소환수는 원할 때에 원하는 소환수를 자유자재로 소환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그 위력과 연출만큼은 절대적이다.
비단 전투 뿐만이 아니다. 실시간 액션을 도입함에 따라 푸티오스 던전과 같은 시간과 움직임을 동시에 살린 실험 퍼즐도 굉장히 흥미로웠으며, 무엇보다도 '동료들과의 여정'을 계속해서 강조했던 타바타 감독의 말대로ㅡ그것이 설령 게임 본편의 이야기와 심각하게 괴리되어있더라도ㅡ 낚시, 사진, 캠프, 요리 시스템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여행'을 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현존하는 미니 게임 중 이 정도로 잘 만든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본편 속 낚시의 '손맛'은 뛰어나며, 조금 뜬금 없기는 해도 요리 재료에 따라서, 전투를 하다가, 혹은 식당 및 레스토랑의 밥을 먹다가 이를 자기화해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모습들, 시간과 상황, 장소에 따라 캠핑을 하며 지내는 모습, 그리고 자신들의 여정을 찬찬히 되돌아볼 수 있게끔 만드는 사진들까지. 이러한 시스템과 함께 충실하게 오락을 즐겨온 이들은 본편의 후반부에 세상은 넓었다는 동료의 말과 함께 프롬프토의 사진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 사진 안에는 FF15를 즐겼던 내가 있고 나의 '여정'이 담겨 있다.
이런 시스템을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역시 녹티스 일행이다. 녹티스, 이그니스, 글라디오, 프롬프토. 이 4명이 여정 속에서 보여주는 관계, 행동과 전투 속에서 시덥잖게 주고 받는 대화들, 여행이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모습들. 이 4명의 여정은 모두 마지막을 향해서 잘 준비되어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스토리의 설명 부족에 따른 작위적인 공백도 존재하며, 이 4명의 여행을 조금 더 길게, 그리고 상세하게 그려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개개의 캐릭터는 그 안에서 여행을 같이 하였고, 마지막에는 루시스 왕국의 국민으로 가슴을 펼 수 있도록 있는 힘껏 열심히 한 나(녹티스)의 동료들이다. 계속해서 왕자로서의 녹티스와 친구로서의 녹티스, 둘 모두를 채찍질하고 다독이는 글라디오와 이그니스, 그리고 동년배이자 친구의 심정을 헤아리며 어떻게든 그의 힘이 되고자 하는 프롬프토. 이들 사이에서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의 고마움과 무거움을 느끼며 성장하는 녹티스. FF15를 호불호의 단계에 두는 이들은 이런 메인 캐릭터들의 모습과 시스템에 만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SONG OF THE STARS
일전에 트위터에서 FF15는 왕의 이야기라는 감독의 인터뷰를 소재로, 이 오락은 그 자체가 왕의 이야기라는 내용을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유사한 이야기를 지인 분의 블로그 포스트에서 보면서 공감하면서 댓글을 달았다. FF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무게. 정말로 FF라는 이름의 무게는 왕의 그것과 유사하지 않았을까. 현실적으로는 회사가 붙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이름 중 하나일 뿐임을 알고 있지만, FF 시리즈의 이름이 가지는 나에게 가지는 무게는 다른 여타 오락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아직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FF15는 필히 이런 논란들에 직면했을 것이다. 왜냐면 FF는 '왕'이기 때문이다. 왕이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왕이기에 그들에게 내가 아직 이렇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FF15는 기존의 왕들이 유지했던 턴제를 폐기한 후 실시간 전투를 도입했고, 자신들이 해보지 않았던 영역, 오픈 월드에의 도전을 감행했다. 이야기와 플레이가 서로 맞지 않은 부조화였을지언정 FF15는 자신의 위상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도전과 성과에 적어도 나는 만족했다. 추후에 이루어질 DLC나 추가 요소가 어떻게 보완을 한다 하더라도 이미 정해진 이야기 속 개연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에 지나지 않겠지만, 나는 FF가 아직 더 나아갈 수 있음을 보았고 담당 디렉터 역시 FF15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더 끌어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의 결과물에 만족한 나로서는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그 가능성을 지켜볼 뿐이다.
역대 모든 FF 시리즈 작품이 공통적으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잡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게임에서 나를 배제한 FF4는 FF3 팬에게, 판타지와 레트로한 2D 감성을 버린 FF7은 FF6팬에게, 만들어지다 만 반푼이 소리를 듣는 FF12, 돈독과 상술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FF13. 그 어떤 시리즈도 이게 FF냐, 이건 FF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피할 수 없었다. 이번 FF15는 기존의 시리즈와는 조금 달리, 과거의 그림자와 싸웠던 FF 시리즈 작품이다. 10년의 기대치와 그림자를 제대로 떨쳐내지 못한 채 FF15는 개발이 진행되었고 발매가 되었다. 10년의 기대는 저주가 되었고, 곳곳에 이 오락을 헐뜯는 소리를 너무나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듣는 소리는 "이건 FF가 아니다"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역대 FF 시리즈가 들었던 그 이야기를 FF15도 듣고 있다. 누가 봐도 너는 FF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그래, 이 오락은 FF다. 내가 어릴 적 패미콤과 함께 즐겼던 그 게임의 시리즈, 그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끝.